이란 천연가스 ‘구애 행렬’ 미국 속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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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2 04:09 



ㆍ유럽·인도 공급계약…경제제재 실효성 의문

미국의 이란 제재 조치에 대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란이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바탕으로 유럽, 인도 등과 잇달아 천연가스 공급 계약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은행 계좌 동결 등 금융제재를 통해 이란의 돈줄을 죄려 했지만 결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1일 ‘유럽 기업들이 전략적인 결정에 따라 이란과 가스 공급 협상에 나서고 있다’면서 이같이 보도했다. 신문은 스위스의 민간 에너지 기업 EGL이 이란과 가스 공급 계약을 체결함에 따라 유럽의 다른 에너지 기업으로 확산되는 징후가 있다면서,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결과라고 전했다. EGL과 이란 국영가스수출공사는 지난 3월 향후 25년간 270억유로 규모의 가스 공급 계약에 합의했다. 미국은 당시 스위스 주재 미국 대사관이 비난 성명을 낸 것은 물론 국무부 대변인의 논평을 통해서 계약을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미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합의한 이란 제재는 핵·미사일·금융 부문에 대한 것이다. 에너지 영역에는 특별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스위스 EGL의 뒤를 따르는 기업도 상당수다. FT에 따르면 프랑스의 토탈, 영국·네덜란드 합작인 로열더치셸, 오스트리아의 OMV는 아직 정식 계약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예비 계약에 합의했다. 중국의 시노펙과 말레이시아의 SKS는 계약 체결이 완료된 상태여서 다른 경쟁 기업들이 이란의 가스에 조바심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란은 세계 2위의 가스 매장량 국가이지만 수출은 매장량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스위스 정부는 난처해하면서도 잘못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미국은 단교관계에 있는 이란과 쿠바에서는 해당국의 스위스 대사관을 미국 대표부로 활용하고 있다. 스위스 외무부 대변인은 “약 30년 동안 스위스는 이란에서 미국의 이익을 지키는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해왔다”고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스위스의 한 고위 관리는 “이란의 에너지 분야에 대한 투자를 금지하는 제재 조항은 없다”면서 “EGL의 계약 체결은 (핵개발 지원이 아니라) 단지 에너지 공급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9일에는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인도를 방문해 프라티바 파틸 대통령과 만모한 싱 총리 등을 만났다. 에너지 분야 협력을 논의하기 위한 방문이다.

에너지 소비 세계 6위 국가인 인도가 원유와 가스가 풍부한 이웃 나라 이란을 멀리할 이유가 없다. 회담 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대화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전됐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WSJ는 인도가 미국과 가까운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이해관계 때문에 이란에 다가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란도 제재에 맞선 자구책을 내놓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이란 국영석유공사는 “앞으로 원유 거래에 있어 달러화로 결제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달러화에 대한 의존도를 낮춤으로써 미국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 정환보 기자 botox@kyunghyang.com>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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