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과 요미우리 용병 잔혹사

                                                   [스포츠서울 2006-04-21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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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30)의 개막전 4번타자 기용이 굳어진 뒤 일본 언론들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사상 3번째 외국인 4번타자가 탄생했다"고 입을 모았다.

 '사상 3번째 외국인 4번타자'는 야구 퀴즈에나 나올 법한 소소한 기록이다. 데이터를 중시하는 일본 야구식 기사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잔혹사'로 이름 붙여도 무방한 요미우리의 외국인 선수사(史)를 떠올린다면 그저 호들갑으로 치부하기도 어렵다.


 역대 요미우리의 외국인 타자는 지난해까지 모두 34명이다. ‘거포 외국인 타자’에 대한 기대치는 일본이나 한국이나 다르지 않다. 중심타선을 맡을 정도라면 400타석 이상 출전해 OPS(출루율+장타율)가 0.900은 넘어야 한다. 34명 가운데 이 기준을 넘긴 선수는 고작 5명 뿐. 외국인 선수 영입에 가장 많은 돈을 쓸 수 있는 구단의 성적표로는 매우 초라하다.


 1999~2000년 LA 다저스에서 박찬호를 지도했던 데이비 존슨 전 감독. 그는 메이저리그 14년 통산 승률 5할6푼4리(1148승 888패), 지구 2위 이상 11회를 기록한 명감독이다. 선수로서도 1973년 2루수 최다 기록인 43홈런을 날렸고, 통산 올스타전 4회 출전, 골든글러브 3회 수상을 뽐낸다. 그러나 그의 선수 생활에서는 태평양 너머의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빼놓을 수 없다.


 존슨은 1975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한 차례 대타 타석에 들어선 뒤 요미우리와 2년 계약을 맺었다. 요미우리 구단 역사에서 뜻깊은 계약이다. 존슨은 ‘순혈주의’를 자랑하던 요미우리의 실질적인 '사상 첫 외국인 선수'였다.


 존슨 이전 요미우리에 외국인 선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본 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퍼펙트게임을 달성했고, 구단 3대 감독까지 맡았던 이팔용(일본명 후지모토 히데오)은 한국계였다. 대만계로는 일본시리즈 1호 홈런의 주인공인 고 쇼세이(1937~1957)가 있다. 통산 309승을 거둔 러시아계 빅토르 스타르핀도 일본인 핏줄은 아니다.

2차 대전 종전 뒤에는 이름이 월리, 번지인 외국인 선수들이 입단했다. 그러나 이들의 성(姓)은 각각 요나미네와 가시와다. 두 선수는 하와이에서 태어난 일본계 미국인이었다. 일본의 ‘야큐’가 아닌 미국의 ‘베이스볼’ 선수가 입단한 사례는 1975년 존슨이 처음이었다. ‘최초의 메이저리그 출신 용병’인 키키 킬리가 마이니치 오리온스에 입단한 해가 1953년이라는 점에서 ‘요미우리 순혈주의’가 얼마나 뿌리깊었는지를 알 수 있다.

 존슨의 영입에는 이유가 있었다. 요미우리는 1965~1973년 전설적인 일본시리즈 9연패를 기록한 뒤 1974년 2위로 떨어졌다. V9의 주역들은 노쇠기를 맞고 있었다. 간판스타였던 나가시마 시게오는 이 해를 끝으로 은퇴했다. 여기에 1965년 시작된 아마추어 드래프트로 과거처럼 우수 선수들을 독식할 수도 없었다. 메이저리그 올스타 출신인 존슨을 추천한 사람은 다름아닌 요미우리 8대 감독에 갓 취임했던 나가시마였다. 나가시마의 결단이 없었더라면 요미우리의 외국인 선수사(史)는 조금 더 늦게 쓰여졌을 것이다.


 일본 땅을 밟은 존슨은 “50홈런을 치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포지션은 3루수. 바로 나가시마가 17년 동안 지켰던 성지(聖地)였다. 입단 첫 해 존슨은 50홈런 대신 ‘8연속 삼진’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세웠다. 시즌 타율은 1할9푼7리. 존슨의 타율은 그 뒤 요미우리와 외국인 선수와의 악연을 상징하고 있다.


 이듬해에는 타율 2할7푼5리, 26홈런으로 준수하게 활약했다. 그러나 시즌 내내 구단과 마찰을 일으켰다. 나가시마 감독은 ‘부상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가겠다’는 존슨의 요청을 거부했다. 존슨이 이를 무시하고 귀국행 비행기를 타자 일본 언론들은 ‘순혈주의를 부활시켜라’며 목청을 높였다. 코치진은 ‘타격 훈련을 하지 않아도 좋다’는 나가시마의 약속과는 반대로 존슨에게 훈련을 강요했다. 시즌 뒤 요미우리는 20%가 깎인 연봉을 제시하고도 존슨이 다른 구단으로 이적하는 것을 가로막았다. 당연히 재계약은 없었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지니 다음도 그랬다. 존슨을 대신하기 위해 다저스에서 사 온 잭 린드는 1977년 65경기에서 타율 2할3푼7리를 기록한 뒤 퇴출됐다. 1980년 오 사다하루가 은퇴한 뒤 ‘오의 후계자’로 선전하며 데려온 1루수 개리 토머슨은 2년 통산 타율 2할4푼9리 20홈런만을 남기고 쫓겨났다. 1980년 영입한 로이 화이트는 ‘사상 첫 외국인 4번타자’를 맡으며 팬들에게 존경을 받았지만 성적은 평범했다.


 성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78년 입단한 존 사이핀은 3년 동안 타율 2할9푼4리, 52홈런을 날리며 분전했다. 하지만 사이핀은 그전 6년 동안 다이요 훼일스에서 뛴 선수였다. 사이핀에서부터 ‘정 안 되면 다른 구단 스타 외국인을 사 온다’는 요미우리의 나쁜 버릇이 시작된 셈이다.

타자로만 볼 때 요미우리의 역대 외국인 선수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1호’ 존슨과 같은 메이저리그 스타들이다. 레지 스미스(1983~1984), 필 브래들리(1991), 제시 바필드(1993), 셰인 맥(1995~1996)은 모두 메이저리그 올스타 출신이다. 역대 최고 외국인 선수로 꼽히는 웨인 크로마티(1984~1990)처럼 성공작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다수는 평범한 성적에 그쳤다. 지난해 게이브 케플러는 ‘재앙’ 수준이었다.

 두 번째는 다른 일본 구단에서 검증된 선수들. 사이핀으로부터 시작해 잭 하웰(1995), 도밍고 마르티네스(2000~2001), 로베르토 페타히네(2003~2004), 터피 로즈(2004~2005)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승엽도 여기에 속한다. 최근 들어 이런 경향이 심해졌다. 요미우리 국제 스카우트팀의 무능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세 번째는 중간 부류다.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에서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가능성을 보고 데려온 케이스다. 이런 선수들은 거의 예외없이 실패했다. '대만의 이치로'로 불렸던 루이스 델로스 산토스(1998)가 대표적인 예다.


 자체 스카우팅 실적이 형편없으니 자연히 다른 구단이 보유한 선수들에게 눈길을 돌린다. 와타나베 쓰네오 요미우리신문 회장은 지난 2003년 “돈은 있지만 프런트가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 실패를 질책했다. 1996년에는 전년도 메이저리그 연봉이 14만 달러였던 제프 맨토에게 1억5,000만엔 짜리 계약을 안겨주는 선심을 쓰기도 했다. 1998년에는 한물간 백업 내야수인 마리아노 던칸을 1억4,300만엔에 덜컥 영입했다. 물론 결과는 실패였다.


 위의 '400타석 이상, OPS 0.900' 이상 기준을 충족시킨 외국인 타자는 존슨(1976), 사이핀(1979), 크로마티(1985, 1986, 1989), 페타히네(2003, 2004), 로즈(2004)다. 이 가운데서도 '요미우리맨'으로 인정받았던 선수는 크로마티 뿐이다. 양대 리그를 대표하는 외국인 선수였던 페타히네와 로즈는 부상에 시달리며 '몸값을 하지 못한다'는 비난과 부담감에 짓눌려야 했다.


 이승엽은 2007년 메이저리그 진출을 공언하고 있다. 일본 진출은 메이저리그로의 꿈이 꺾인 뒤 선택한 차선책이다. 올해 요미우리에서 성공을 거둔다면 다시 한 번 도전장을 던질 예정이다. 그러나 실패로 점철된 요미우리의 외국인 선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것 만으로도 이승엽의 성취는 가볍게 볼 수 없다. 한 시즌이 될 지, 2007년 이후에도 이어질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다음은 이승엽이 올해 도전하는 역대 요미우리 외국인 선수들의 최고 성적이다.

득점 : 104(1952년 월리 요나미네)
 안타 : 172(1954년 월리 요나미네) 
 2루타 : 40(1954년 월리 요나미네) 
 홈런 : 45(2004년 터피 로즈) 
 타점 : 112(1985년 워렌 크로마티) 
 4구 : 77(2003년 로베르토 페타히네) 
 타율 : 0.378(1989년 워렌 크로마티) 
 출루율 : 0.449(1989년 워렌 크로마티) 
 장타율 : 0.673(1986년 워렌 크로마티)


<스포홀릭 최민규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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